이승택-거꾸로, 비미술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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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사회·역사
1932년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나 6.25 한국전쟁 중에 월남한 이승택작가는 한국의 역사적인 순간들, 그 안에 있었다.
이러한 성장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연스레 한국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회에 출품된 <무제>는 이러한 작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벽에 걸린 회화 작품들 속 불꽃은 동학농민운동의 열정을 상징하며, 바닥에 넓게 깔린 광목천 위 사발통문을 모티브로 한 글귀와 규칙 없이 나열된 요강, 흙, 쇳가루들은 동학농민혁명 중 죽어간 민초들의 고난과 삶을 대변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작가는 관심사는 역사를 넘어 생태, 환경 종교 문화 등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합성사진이 아닌가 생각되는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5미터가 넘는 지구 모양의 풍선을 제작하여 시민들과 함께 진행했던 <지구행위 퍼포먼스> 이다.

1991년 경기도 수원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독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세계 곳곳에서 지구 그림이 그려진 대형 풍선을 야외로 끌고 나가 시민들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굴리고 던졌다. 작가는 이를 통해 90년대 초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대두된 환경문제를 알리고 ‘지구를 살리자’라는 생태회복의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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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과정·회화
이승택 작가는 회화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하였다. 단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개념을 넘어, 불을 태우고 남은 ‘그을음’을 이용한 회화나,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여 그린 ‘물그림’은 이러한 작가의 실험적인 행위가 중시된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녹의 수난>은 녹색 페인트 만으로 제작되었지만 작품을 불에 태워 생기는 그을음으로 작품 상단 검은색 부분을 완성하였다.
한 가지 색상만을 사용하여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두 가지의 색을 만들어낸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인상 깊었다.

바다를 표현한 회화작품인 <산정의 바다는> 작품의 이름처럼 파도의 이미지를 그린 후, 작가가 작품을 들고 산 정상에 올라가 작품을 완성시켰다.
가장 위쪽인 산의 정상과 가장 아래쪽 바다를 역전시키는 이 작품은 작가의 거꾸로 미학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처럼 이승택의 회화작품은 완성된 그림 그 자체 보다 작품제작 과정과 그에 수반되는 행위가 더 강조된다.

1995년 <정림건축 해체 이벤트>당시 보여준 퍼포먼스로 완성된 <물그림>은 작가의 행위위주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해체될 예정이었던 ‘정림건축 구 사옥건물’ 창틀을 뜯어내고 창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린 캔버스 위에 물감주머니를 부어 완성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퍼포먼스가 담긴 영상을 상영하고 있어 작품의 생동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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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비조각의 만남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작가의 ‘비조각, 비미술’의 근간이 되는 말이다.

작가는 대학시절 빠르게 변화하는 서구의 미술사조를 따라가는 것은 결국 ‘아류’가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서구의 미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야인 ‘비조각’을 탄생시키게 된다.
작가는 서구적인 것과 가장 대조되는 민속적인 것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전통설화에서 착안한 작품을 제작하거나 전통옹기와 같은 민속적인 재료들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민속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은 한국의 민속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무속신앙으로 이어졌다.
마치 무속인의 집을 연상케 하는 해당 섹션에서는 무속과 관련된 여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통옹기를 쌓아 올린 <상장 오지탑>부터 성황당에 매달린 천 조각을 연상케 하는 <바람> 등의 작품에서도 무속신앙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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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화 사이
1970년대 당시 사진은 ‘기록’ 하는 매체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작가에게 사진은 실험적 예술의 또 다른 매체였다.
작가는 사진 위에 회화적인 요소를 가미하거나 다른 사진을 콜라주 하여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현재는 이미지 합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손쉽게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작가의 이러한 사진 작업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모래 위에 파도그림>은 작가가 바다에서 진행했던 퍼포먼스를 촬영한 사진에 푸른색과 붉은색을 활용해 그림을 그린 사진-회화 작품이다

1971년 작가의 첫 개인전 당시 대부분의 작품이 사진이었을 만큼 사진-회화 작품을 대거 제작했는데 이는 단순 사진과 회화의 콜라보를 넘어서 작가가 퍼포먼스를 통해 미쳐 보여주지 못한 것을 사진 안에서 실현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에 가상의 현실인 회화를 결합함으로써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작품을 보여주는데 작가가 보여주는 거꾸로 미학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신진 작가들의 전시에서는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트렌드와 새로운변화, 시도 등을 읽을 수 있지만, 이승택 작가와 같이 연륜 있는 작가들의 전시는 미술을 깊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올해로 90세를 맞이한 이승택 작가는 최근까지도 ‘배움’에 대해 강조한다. 미술을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평생 미술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작가 이승택의 전시는 미술을 보다 넓게 바라보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